박광선
푸르스름한 색면 위에서 아스라이 드러나는 소중한 이의 얼굴 위로 흩날리는 흰 눈이 겹쳐진다. 몇 번을 망설였고, 몇 번이나 붓을 멈추었다. 그러나 간절히 그려내고 싶었다. 함께 한 시간만큼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를수록 더욱 완성하기 어렵기만 하다. 타인의 부재를 기억하고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그의 얼굴,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아련해진다. 지금껏 마주하고 싶지 않아 뒷걸음쳤던 불분명하고 미묘한 어떤 것이 그 위를 덮으려는 듯 느껴진다. 어떤 윤곽도 없고, 뭐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어떤 것이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릴 듯하다.
그런 불안이 엄습해올 때. 또, 다시 봄이 왔다. 눈부시게 화사한 개나리꽃이 그 위에 피어났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꽃들은 시들 것이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은 유한하다는 말을 전하기라도 하듯 꽃잎들이 화면에 박히듯 흩뿌려져 있다. 모든 것이 아련하게 보이지 않게 뒤덮히고, 그의 얼굴이, 그의 모습이 감추어질수록, 노란 개나리꽃은 선명히 빛난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겨울」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존재한다(Nos sumus) ● 모든 생명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도 주어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하이데거는 이런 인간 현존재를 가리켜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불렀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동안 결코 그것은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타인들을 통해서 그들의 부재, 그 중에서도 죽음이라는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절대적인 부재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언제나 이미' 타인과 함께 이 세계에 살고 있음도 직시하게 된다. 나와 타인은 이 세계에서 유한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타인은 나의 실존에 절대적 조건이다. 개인은 자아나 주체의 개념에 사로잡혀 자기 내부를 향해 고립되어 있는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외부를 향해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한계 그 바깥과의 접촉을 통해 다른 존재의 한계를 감각하며 자신의 유한한 존재를 세계에 드러내는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와 타인들은 서로를 통해 '우리는 존재한다(Nos sumus)'는 것을 확인한다.
Mirror, Another mirror ● 비스듬히 들어온 빛줄기가 거울에 반사된 얼굴에 드리워진다. 오래된 듯 손때가 묻은 테두리 속의 거울 속의 얼굴과 마주한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당황스러움이 밀려온다. 거울 속에 당연히 있어야 할 나의 얼굴이 아니다. 나와 마주한 이는 다른 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만 같은 누군가이다. 나와 함께 했던 나의 그리운 지인의 얼굴이라고 붙잡으려고 하면 다시 빠져나간다. 또 다른 이의 얼굴이 다시 겹쳐진다. 다시 시선이 나를 응시한다. 불편한 그의 응시에 혼란은 가중된다. 기억 속의 얼굴들이 겹쳐져 나타나고 사라지는 반복 속에서 나를 비춰야 하는 거울 이미지와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진다. 더 이상 닮은 누군가를 찾으려는 시도는 그만두려 한다. 나는 지금 확정할 수 없는, 재현 불가능한 어떤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나는 매 순간 생성되는 세계의 파편들 속에서 상당히 기묘한 기억과의 접촉을 경험하고 있다. 그 옆의 수많은 또 다른 거울들도 마찬가지다. 타인들의 수많은 얼굴들이 끊임없이 명멸하는 운동을 거듭하고 있다.
작가 박광선의 거울 시리즈 작품은 예기치 않은 파열을 일으키는 미적 감각체험을 통해 세계의 실재를 드러내 보여준다. 그가 제안한 수많은 타인들과 만남은 관람객에게 예기치 않은 낯선 응시를 경험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어떤 박탈감, 이질감, 불안정함은 자신의 닫힌 내부의 어떤 중심을 흔들고, 자신의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미적 장치이다. 여기에서는 이제 모방의 논리는 거절된다. 그뿐 아니라 매끄러운 거울과 같은 표면의 재현도 불필요하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거나 호소하려는 시도 역시 제거된다. 작가 박광선은 형상언어 위에서 쉼 없이 이행하며 의미 작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다시 말해 '매 순간 운동 중인 현상의 그 간격을 현시(장 뤽 낭시)'하기 위한 자신의 방식을 모색해 왔다.
그것은 작품을 제작하는 전 과정에 담겨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아는 지인으로부터 그의 사진과 사용하던 벽걸이 거울을 수집한다. 그리고 거울을 제거하고 프레임만을 남기는 기본 작업에 착수한다. 빈 프레임 안에 사진의 이미지가 그려질 바닥면은 나무 합판을 잘라내고 뜯어내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화면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가상과 실재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해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거친 외곽선도 기꺼이 그대로 사용한다. 이렇게 바닥면 작업이 마무리되면, 형태를 올리기 시작하는데 이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얼굴 이미지를 그리기 전에 그들의 사진을 보며 형태를 읽어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화면에 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사진에 의존하지 않는다. 작가 박광선이 그리는 인물은 이제 재현을 위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려진 얼굴형상을 흐트러뜨리기도 하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닦아내고 다시 위에 붓질을 더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감춤으로써 드러내기 위한 이중의 제시 방법을 모색한다. 이제 사진의 인물과 공유한 존재적 관계를 고유한 감각 언어로 변환시킨다. 어떤 의미로 고정되기 이전 혹은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흔적들을 그려 넣기도 하고, 이렇게 닦아내고 덮고 감추고 흔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겹겹이 올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이면서 과거를, 그리고 과거이면서 현재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도록 가시성은 희생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빛이 화면 위에 등장한다. 그의 거울 속 인물들에 공통된 특징은 눈과 빛이다. 무기력하고 흐릿한 이미지 속에서 강렬하게 응시하는 눈과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투명한 빛줄기는 관람자의 각성을 위한 방아쇠이다. 이제 거울시리즈는 완결없는 운동 속에서 유예된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매 순간 생성되는 현시 속에서 명멸하며, 그 앞에 선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다르게 드러나는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여기'에서 마주한 '나'이자 '너'의 존재를 감각하도록 이끈다. 이렇게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감각이 생성되는 경험,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또 벗어나는 ● 작가 박광선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내부에 고립되거나 개인의 형식에 갇히지 않기 위해 자기라는 한계를 벗어나 외부로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한다. 그는 우리의 현실, 이 사회적 상황에서 작가로서, 개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던진다. 작가로서의 사물성,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는 노동에 대한 여전한 회피의식에 대해, 그리고 작품을 둘러싼 관객과 작가 사이의 「천박하고, 값싸고, 기만적인」 시선과 미적 체험에 대한 맹목과 냉소에 대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타자들에 대해 열린 태도를 제안한다. ■ 박겸숙
"빛이라는 것은 인식과 각성이며 한때의 장면이다. 사진이 한때의 추억을 담듯이... 빛은 하나의 레이어와 같은 한때의 장면을 덮는다. 물리적 한계에 부딛쳐 좌절과 분열을 격고 각성과 행동할 수 있는 지금, 나의 정체를 더 잘 느낀다. 그렇게 봄날의 햇살은 빠르게 지나갔다." ■ 박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