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다빈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단어나 글에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화면 위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내러티브가 있는 사건’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나길 바라는 작가는 분절된 단어를 연결하는 하이픈(-)이나 문장 속 띄어쓰기와 같은 공백을 찾는다. 전다빈은 바로 그 틈에서 내러티브를 길어 올린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이자 피해자로서의 입장에서 사이버불링의 심
각성을 전달하고자 하는 권지안 작가는 오브제 설치작품 <,Beyond the
APPLE A-Z>을 제작했습니다. 권지안은 미술 전공자가 아닌 연예인이
작가가 되었다는 이유로 악플러들의 타겟이 되었습니다. “사과는 그릴
줄 아니?” 누군가가 사이버 세상에 쏘아올린 시기어린 댓글 하나가 얼
마나 아픈 상처가 되는지 경험한 작가는, 조롱어린 ‘사과(apple)’라는
말을 이제는 자신과 사이버불링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과(apology)로 승화하고자 합니다. 권지안 작가의 ‘애플 폰트’는 말과
글을 넘어선 사과 그 자체를 중의적으로 표현하는 오브제입니다. 작가
에게 사과는 자신을 괴롭힌 상대에게 요구하는 사과이기도 하고, 더 이
상 자책하지 않고 힘을 내어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권지안 작가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들에게 시스템화된
사과의 언어인 애플폰트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렇게 자신을 무겁게
짓눌러 온 마음의 상처를 이제 내려놓으려’ 합니다. 더 이상 어떠한 혐
오도 폭력도 존재하지 않는, 온라인 세계가 가진 긍정적인 존재 이유에
충실한 사이버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김길웅 작가는 왜 이렇게 비인간적인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렸는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 합니다. 유학 시절 만들었던 코카콜라캔 비행기는 외롭고 힘든 시기
에 동료들, 친구들이 던지는 시기어린 말에 상처받고 침묵 속에 살던
자신에게는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자신의 코카콜라 캔 비행기를 한없이
바라보던 허름한 행색의 노부인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후 자
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이어지는 선한 고리가 되었던 기억
을 떠올립니다.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살아가게 하는 의미
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나누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생의 에너지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상처되는 말을 던
지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가시돋힌 채 살
아가기보다, 누구도 아프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
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모든 이들의 삶의 순간들을 소중히 생각하
는 마음들이 모이는 사이버 세상을 향해서, 작가는 오늘도 우리가 그곳
을 향해 가길 바랍니다
김창겸 작가는 예술가로서, 예술이 가진 위트와 긍정의 힘으로 목소
리를 내고자 합니다. 작가는 관객이 안티-사이버불링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인터렉티브 작품을 선보입니다. 의도치 않게 관객은 주인공이
됩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아름다운 이미지들과 함께 시작되는
선플(선한 댓글)들의 세례에 관객은 놀라움과 동시에 즐거움을 느낄 것
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의 선플이 주는 다정함과 용기만큼, 동시에 익명의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던지는 발언이라는 사실은 적잖은 두려움을
불러옵니다. 그의 선의가 어느 순간 악의로 바뀐다면, 무대의 주인공이
된 여성 관객은 익명의 이들로부터 가해지는 폭력적인 발언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테니까요. 불안한 상상 속에서, 작가는 꿋꿋이
희망을 말하려 합니다. 작가의 선플에 지금 당신이 세상을 향해 웃음지
은 그 순간, 웃음짓는 얼굴을 바라본 그 느낌을 다른 이에게 이어주길,
작가는 여전히 선한 힘을,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이돈아 작가는 어떤 이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잔인한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피해자를 슬픔과 무력감, 그
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기파괴로 향하는 분노로 치닫게 만드는 이
현실을 어떻게든 우리가 끊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한 목소리로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담
은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파편화된 현실들, 실제와 가상이 공존하는 지
금, 담담히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마주할 수 있는 힘과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과 존엄을 되찾기를, 그리고. 사이버상에서 무방비로 당하는 폭력
에 절망하여 생명까지 놓아버리는 슬픈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가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자신을 내어주지 말고, 작지만 뜨
거운 핏방울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듯이, 어두운 밤
을 밝히는 붉은 꽃이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기도합
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응원합니다. 다시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창을 열어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기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세상, 사이버 공동체의 긍정적인 힘으로 충만한 사회를 작가는 꿈꾸고
있습니다.
작가 손 스안(Son siran)은 가상공간에서 키보드를 통한 입력은 힘
이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이버 폭력의
확산 속도, 마치 사이버 세계에서 바이러스처럼 맹위를 떨치며 확산되
는 그 파괴력에 주목합니다. 작가는 진위를 가리기도 어려울 정도의 수
많은 정보로 일렁이는 가상세계의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는 자신을 어떻
게 보호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되묻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을 스스
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관계를 제대로 맺는 것에서부터 시작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세계처럼 가상세계에서도 결국 우리는 타
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상세계는 지금 우리
가 살아가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버 세계에
서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
으로,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하고 마주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거기에
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 존
재로서,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고민하는 디지털 윤리로부터 시작해야하는게 아닐지 작가는 진지한 고민
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작가 샤엔(Xia Yan)은 진위를 알 수 없는 일개의 소문들이 모여 눈
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어느 날 산을 사라지게 만들어버린 ‘실종된 산’
을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진상과 상관없이 떠도는 소문에 의해
훼손되다 결국 그 존재마저 사라져 버린 ‘어느 이름조차 모르는 산’. 근
거없는 소문, 억측, 비방이 어떤 존재를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섬뜩한 이야기는 지금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
는 사이버 불링의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불특정 다수, 이름도 모르는
어떤 이의 일상생활 속 행동이나 실수가 거침없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세상입니다. 사이버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이버불링은 어느 국가
에 한정된 사회 병폐가 아닙니다. 중국도 사이버불링은 심각한 사회문
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마음을 잃어버린, 진실과 동떨어진 소
통이 만들어낸 세계의 끝에는, 이런 슬픈 이야기가 남는다는 이야기를
그의 작품 ‘사라져버린 산’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아트노이드178 박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