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을 지나
2024.09.25.-10.15.
주관/ 주최 아트노이드178
“난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야”
권지현 작가의 개인전 < 깊은 숲을 지나 >가 9월 2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아트노이드178에서 개최된다. 권지현 작가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구전설화에 담긴 작은 목소리들을 찾아 우리 시대에 필요한 서사로 재탄생시키는 미디어아트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가 주목하는 고대 신화나 설화에는 그것이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정신과 보편성이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신화나 구전으로 전해주고자 했던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 작가는 이런 오래된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자신에게 보이지 않지만 높게 쌓여올려진 편견들을 조금씩 깨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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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숲을 작품 안으로 소환한다. 작가가 수집해온 수많은 고대 신화나 설화의 이야기들은 숲에서 시작한다. 축축한 흙내음으로 가득한 어둡고 깊은 숲은 생존을 향한 약육강식의 본능이 꿈틀대는 공포와 두려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숲을 우리 내면의 공간이자, 무의식의 공간으로 치환한다.
숲에서부터 어딘가 친숙하면서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낯선 생명체들의 소리가 나직하게 울리면, 권지현 작가의 시선에서 다시 쓰여진 옛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작가는 타자들을 지배하기보다 상생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주인공들의 서사에 주목한다. 주인공들은 자기 성찰을 통해 내면의 평화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한 단계 성장한다. 그들은 현세와 내세, 인간과 비인간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들만의 규칙을 지켜간다. 그 규칙은 집착하고 욕심내기보다 공정하게 서로 나누고, 감사하며 타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을 갖든, 가지지 않든, 받은 만큼 다시 자연에 되돌려 주는 것이다. 작가는 안전한 자신의 틀인 숲으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와 이 세상에서 기꺼이 환대받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용감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권지현 작가는 메리 올리버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영상작품 를 통해 아직 나비가 되지 못한 작은 존재들이 숲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우리에게 상상하게 한다.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는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낙담하고 한없이 외롭고 두려울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작가는 전하고자 한다.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너희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을까’라는 말로, 타자와 함께하는 삶, 공동체와 우리 이웃이라는 존재들의 의미를 되찾고자 한다.
권지현 작가는 전시에서 선보인 < 이웃 > 3부작 이어 이번 전시 < 깊은 숲을 지나 >에서도 우리의 이웃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과 어떻게 공생해야 하는지,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이번 전시 < 깊은 숲을 지나 >를 통해 우리의 내면이자 무의식과 같은 깊은 숲을 지나, 기꺼이 환대하는 세상으로 한 걸음 용기있게 나아가자는 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글/ 아트노이드178 대표 박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