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neighbors are creepy.
아담 코츠코(Adam Kotsko)의 글에서 가져온 이번 전시 제목 “All neighbors are creepy”처럼, 작가에게 이웃은 좀처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오싹한 존재들이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낯설고 섬뜩하다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감정은 자신과 살아온 시간, 역사가 다르고, 상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신문에 오르내리는 뉴스들을 볼 때마다 그 다름의 결과들은 소름끼치게 싫어진다. 그런 상황을 야기하는 우리 사회가, 아니 그들의 사회가 지긋지긋하기도 하다. 그래서 다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가보길 꿈꾼다. 내 주변으로부터, 이 답답한 사회로부터,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불가능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 하나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 아니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존 재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가야 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타협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보다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단절하고, 서로를 혐오하며 전쟁으로 치닫는다. 모든 것이 부서져 황폐해진 도시에서 이웃들의 삶은 참혹해진다.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절박한 외침에도 여전히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행동에 미연적이다. 심지어 국익을 우선하는 이기주의에 막혀, 공존을 위한 합의는 깨어지기 일쑤다. 이처럼 이웃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은 끊임 없이 발생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영상 속 점멸하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에는 그렇게 숲을, 바다를, 동물을, 그리고 이웃들을 바라봤던 우리들의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우리가 그러한 사실들로부터 눈돌리지 않기를, 더 이상 적대시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웃, 우리의 이야기
작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들어 본 적 있는 오래된 동화 속 주인공, ‘그녀들’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화자로 소환한다. 우리 이웃이 된 ‘그녀들’은 우리의 이웃이 되기를 열망했던 이들이다.
< 이웃1 : 나의 이웃 >은 작가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 재채기 >로부터 출발한다. 지난 몇 년간 팬데믹을 거친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한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작가는 ‘루머’의 양산이 가져올 폐해를 시각화한다. 어떤 이의 재채기에서 시작된 공포는 삽시간에 세상에 퍼져나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기사들로 빼곡한 신문 지로 만든 종이박스에 붙은 이웃들의 표정에서 보이듯, 죽음의 공포로 물든 세상에 이웃은 끔찍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게 단절된 그들은 결국 절멸한다. 그러나 그 자리엔 다시 새 생명이 돋아난다. 이웃이 사라진 세상은 자연에게 돌아간다. 숲이 되어 다시 치유된 세상은 다시 인간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 이웃2 : 엄지공주 인큐베이터 >에는 작은 열매 껍질이 하나씩 들어있다. 열매 안에 씨앗의 자리에는 붉은 실, 생명을 지켜주는 탯줄이 감겨져 있다. 그것은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는 소망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려도 우리는 또 태어난다. 그렇게 다시 살아간다. < 이웃3 : 인어공주, 우리가 사는 세상 >은 목소리를 잃고 사람이 된 인어공주가 우리 이 웃이 되어 그녀의 눈으로 본 세상을 보여준다. 쉼없이 엔진처럼 돌아가야 하는 도시의 세상, 같은 인간임에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세상, 자연을 끝없이 착취하는 세상을 여행하며 실망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이웃과의 기억도 함께 간직한 인어공주는 여전히 우리의 이웃으로 남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꿈을 이루지 못한 인어공주는 공기요정이 되고 만다. 그러나 동화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공기요정이 된 인어공주 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천 명의 어린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다시 인간으로 변신하여 우리 이웃으로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웃이 되고자 했던 인어공주의 시선을 빌어 세상을 보여주는 작가는 덴마크 코펜하겐, 노르웨이 트롬 소, 미얀마 바간, UAE 알아인 낙타시장, 이과수 폭포, 볼리비아 오루로 축제에서, 그리스 프루니 바다에서 그리고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서 만났던 이들의 이야기들을 작품 속에 투사한다. 가까운 우리 일상에서 순간순간 만 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며 사진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여성의 삶에 대한 관심, 급증하는 난민들의 문제, 경제패권으로부터 소외된 국가의 인권문 제, 기후문제 등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왔다. 작가는 그들의 고단한 삶에 공감하며,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같이 연대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는 사실을 다시 되 새겨 보아야한다고 제안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 이웃에 대한 맹목적 냉소에 대한 비판도, 인간의 선의에 기댄 무책임한 낙관론을 갖자는 것도 아니다. 「팬데믹 패닉」에서 지젝(Slavoj Žižek)이 말했듯 ‘지금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지금은 우리 이 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임을 작가는 전하고자 한다. fin. ■ 박겸숙 (아트노이드178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