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용, 최윤정, 홍순명, 홍일화, 황현호
이제 소녀는 혼자가 아니다.
눈물을 참고 있는 듯 굳은 표정으로 홀로 의자에 앉아있는 앳된 단발머리 소녀. 치유되지 못한 고통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온 이들은 누군가의 딸이었고, 여동생이었다. 주권을 잃어버린 나라의 소녀들이 겪었던 참혹한 일들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반세기를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소녀들의 고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미완의 역사
화려하고 강렬한 그림들 사이에 가슴이 저릿하게 다가오는 얼굴들이 있다. 10점의 할머니 초상화에는 외롭고 힘들었을 이들의 고단한 삶이 그려져 있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이들의 인생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두 번 다시 떠올리기조차 힘든 과거로 인해 빛을 잃어버렸다. 그 누구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제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송두리채 빼앗긴 이들은 지금까지 사과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의 멸시와 무관심으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갇혀버렸다. 살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볼 수 없었고, 귀를 열고 있어도 들을 수 없었다.
작가 홍순명은 가슴의 한으로 남아버린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의 “아직 청산되지 않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회한을 작품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그가 그리지 못한 할머니들의 이목구비는 언제 완성될 수 있을까. 눈, 코, 귀, 입이 그려지지 않은 할머니들의 얼굴을 마주하면 우리의 마음은 저려온다. 할머니의 초상화는 마치 거울과 같다. 그 앞에 선 우리의 얼굴이다. 이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절규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에게) 정확하고 분명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것들을 확실하게 기억해야(버락 오바마, 2014.10. 미·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 한다. 언젠가 미완의 초상화 시리즈의 할머니들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그려지게 될 그 날을 꿈꿔본다.
어둠과 빛 속에서 조명되는 얼굴들을 만나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해오고 있는 홍순명, 홍일화, 신창용, 황현호, 최윤정, 한경자, 김현지, 한호, 이이남, 한승구, 이상수, 김승우, 김원근 작가가 참여한 <2021 WOMEN’S MARCH 행진展(2021.8.26.-9.6)>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들’을 품고 살아온 우리의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북구에 위치한 전시장 5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2021 WOMEN’S MARCH 행진展>은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서 여성인권을 조명한다. 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박탈당한 전쟁 중 성노예 피해자들(‘위안부’는 일본군의 입장에서 명명한 명칭이다. 1998년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가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 보고관의 보고서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것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후 2012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무부장관은 이 명칭에 대해 ‘강제된 성노예’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고,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대해 ‘"엄청나게 지독한 인권침해(terrible egregious violation of human rights)"라는 표현을 덧붙여 사용한바 있다(허성태, <일본정부의 위안부문제 인식과 동포사회의 공공외교적 대응 고찰 :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중심으로>, 「동북아문화연구」 vol.47,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6, p.163).), 소외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들을 현대미술작가들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작가들은 지금까지 어둠 속에 묻혀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밝은 빛 속으로 불러내었다. 조형적 상징으로, 생생한 현실의 재현으로, 은유적인 예술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들은 그 어떤 단어보다 강력하다. 올해 9회를 맞이하는 <2021 WOMEN’S MARCH 행진展>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가 되어가고 있다.
인류 보편의 아픔을 공감하는 세계의식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공익프로젝트의 성격을 띠고 있는 <2021 WOMEN’S MARCH 행진展>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로 인식한 미국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촉구하는 법안을 사상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2014년 LA 북부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해외에서는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글렌데일시(市)는 매년 7월 30일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제국군 부대에 끌려가 성노예로 학대당한 <위안부의 날(Comfort Women Day)>로 제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방문해 일본이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지 못하도록(국민일보)”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이곳에서 인종도, 국적도, 언어도 다른 이들이 우리 역사의 아픔을 인류 보편의 아픔으로 공감하고,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역사적 책임을 촉구하는 순간을 함께 했던 전시 총괄기획자 전혜연 큐레이터는 그날의 가슴 뜨거워졌던 그 느낌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고백한다. 전쟁범죄와 인권모독행위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녀는 현대미술을 통해 ‘기억해야 할 우리의 아픔’과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한 활동에 착수했다. 동시대 작가들과 이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식적 연대를 공고히 해 나갔다. 이렇게 국내외의 많은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고민하고 관련 이슈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나갔다. 매년 새로운 시선으로 작품을 제작하여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국내외 많은 곳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예술의 힘은 강하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이들도 인류 공통의 언어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작품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처럼 가슴 아파하며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감동한다. 이러한 감정적 공유를 통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촉구하고, 보편적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고, 한 마음이 되어 세계가 함께 연대한다. 이렇게 조금씩 세계는 나아간다. 이 변화가 인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청산되지 않은 미완의 역사는 이제 우리와 일본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인류 공통의 문제이며, 더 이상 전쟁으로 고통받거나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한 평화에 대한 문제이다.
이제, 함께
성북천 분수마루 광장 전면에 세워진 모니터를 바라보다 뒤를 돌아본다. 언제나 혼자였던 단발머리의 앳된 소녀 옆에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가 함께 있다. 이제 소녀는 혼자가 아니다. (2014년 미국 글렌데일시에 세워진 소녀상을 접한 중국 영화제작자 레오스융과 중국 청화대 교수 판위친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중국인 소녀상이 한국인 소녀의 외로운 싸움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이들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해온 김운성, 김서경 작가에게 직접 제작을 의뢰하였다. 이렇게 한국인과 중국인 두 나라의 예술가들이 공동 제작한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2015년 10월 28일 국내에서 최초로 성북구에 설치되었고 현재 성북천 분수마루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두 소녀는 움켜쥔 작은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곧게 허리를 펴고 앉아 앞을 응시한다. 우리도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마디라도 진실한 말을 듣고 용서해 주는 것이다. (김복동)”
화려한 꽃과 보석들, 다채로운 색의 스카프를 한껏 두른 할머니들의 밝게 웃는 얼굴이 모니터 가득 빛난다.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홍일화)>의 깊게 패인 주름들이 ‘모진 시간의 상처’도 ‘현재도 이어지는 아픈 세월’의 흔적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 모든 아픔이 치 유될 수 있도록 진정성있는 사과를 받는 그 날,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환한 웃음을 지어 만들어진 아름답고 명예로운 주름이 되기
를 희망한다. <끝> ■ 박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