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전다빈 개인전 : para (피안)

전다빈
나는 계속 x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작품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에 끌린다. 그것은 소설뿐 아니라, 모든 예술에 해당된다. 아름다움은 내러티브가 있는 사건(한병철)이기 때문이다. 내러티브는 사물들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자주 보는 영화에서도 익숙한 사물들이 돌연 낯설게 느껴지면서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만난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 일들은 언어와 의미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띄어읽기를 잘못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맥락, 다른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사실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시적인 상상력과 낯설어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는 예민한 감각만 있다면, 세상은 매 순간 모든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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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다빈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단어나 글에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화면 위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내러티브가 있는 사건’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나길 바라는 작가는 분절된 단어를 연결하는 하이픈(-)이나 문장 속 띄어쓰기와 같은 공백을 찾는다. 전다빈은 바로 그 틈에서 내러티브를 길어 올린다.



중첩된 시간 속에서

전다빈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 숨은 기호들을 포착한다. 그것을 일상의 사물과 사건들에 연결한다. 그러나 그 연결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절된 단어나, 파편화된 내러티브로 머문다. 내러티브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전다빈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는 선형적 시간 너머에 있다. 과거는 지금 반복되고, 미래는 여기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혹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중첩이다. 내러티브의 파편들은 전다빈의 작품 속에서 중첩된 시간의 흔적들을 만든다. 작가는 그 비밀스러운 순간을 작품 속에 기입한다. 그것은 연필로 쓰여진 미결의 사물 ‘x’로 가득 찬 편지이다. 작가는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아직 사건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전하려 한다.

과거 자신이 경험한 사건이 지금 여기에서 되살아난다. 관객은 문득 이 x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임을 발견한다. 작가는 사물과 사건들을 연결하며 내러티브를 완성하려 한다. 그럴수록 의미들은 그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내러티브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내러티브를 위한 공백이다. 아직 언어로 분화되기 이전의 것들이 여기로 도래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의미들은 어떻게든 움직이고 변화한다.

  나는 모든 것들이 x같이 느껴졌다.

                 .....나는 계속 x를 그리고 있다.” (전다빈 작가노트 중에서)



x의 이야기

작가 전다빈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며,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그것들은 마치 움켜잡는 순간 다른 것으로 전이되는 비정형의 물질처럼,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기를 거부하는 의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전다빈은 잉여의 의미들이 발생하는 사례들을 수집해 왔다. 철자를 분절하거나 공백을 넣어 원래의 의미 외에 두 개 이상의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단어라든가, 다중적인 의미로 읽힐 수 있는 기묘한 문장들이나 글을 찾아낸다. 그렇게 모은 문장들은 한 줄의 선으로 화면에 배치되거나, 해독불가능하게 변형된 텍스트가 되어 화면에 놓여진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의미의 규칙을 느슨하게 만든다.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언제든 다른 의미로 전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려는 것이다. 전다빈의 그림 속에서 등장하는 무한히 숫자를 늘려가는 미지수 x는 바로 ‘아직’ 현재화되지 않은 것들을 위한 공백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더 나아가 작품 그 자체에 끊임없이 새로운 내러티브가 생성될 수 있는 빈 자리를 마련한다. 공백은 단어나 문장이 끝내 담아내지 못한 의미들, 전해지지 못하고 남겨진 의미의 잉여들이 머무는 자리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공백

전다빈의 작품에서 공백은 가능성이 공간이자, 긍정적인 힘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그것은 어떠한 색도 칠해지지 않은 흰 여백이자, 투명하게 쓰여진 시이며, 채워질 내용물을 위해 비워둔 공간이다. 전다빈의 이불 드로잉 <  Take care To. p  >은 다양한 내러티브가 생성되는 장소이다. 작가는 시적인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내용과 형식이 유희로 직조한 이 작품을 선보인다. 전다빈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어떤 사물과 관계맺을 때, 그 사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관찰한다. 거기에서 어떠한 의미들이 생성되었다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다가왔다 멀어지는지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렇게 점멸하는 많은 의미들을 위한 장소가 필요하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그 장소가 바로 미결의 문자 x이고, 아직 확정되지 않은 문장들이 이어진 편지이다. 전다빈은 희고 푹신한 이불 위에 텍스트를 얹는다. 파란 흔적이 얹어진 흰 천, 알 수 없는 기호들로 쓰여진 텍스트와 편지 그리고 일상의 시간들이, 그 모든 요소들이 흰 이불 위에 중첩된다. 작가는 ‘P’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작가에게 ‘P’는 수신자이며, 공백의 상징이다. 작가는 ‘P’를 이용해 의미와 발화의 유희를 시작한다.

작가는 공백을 상징하는 발음으로 ‘피(phi)’를 선택했다. 발음의 유사성을 통해 사물들을 다양한 것들이 고정되지 않고 미끄러질 수 있는 공백과 연결한다. 발음 ‘피’는 어떤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껍질을 의미하는 한자 피(皮)이면서, 동시에 물리학에서 원자핵을 둘러싼 껍질모형 중 6번째 층위 피각(P殼)을 지칭하는 피이며, 우리 주변에 거주하는 모든 정령을 의미하는 태국어 “피(PHI)”이다. ‘피’라는 발음과 관련된 모든 의미들이 도래한다. 그러나 그 많은 의미들은 미끄러질 뿐 고정될 수 없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대상 ‘p’는 생성되는 내러티브를 위해 비워진 공간이자, 텅 빈 껍데기이기 때문이다. 전다빈 작가의 이불드로잉은 어떤 이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흰 껍질이다. 삶의 위안이 되는 빈 공간. 그렇다. 이불드로잉은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아 방황하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전다빈은 이번 전시 에서 ‘잠재성으로 충만한 잉여’의 의미들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세계를 다채롭게 드러내고자 한다. 생성되는 가능성의 세계로 피안(彼岸)을 작가는 상상한다. 저편의 피안에서 우리가 있는 차안(此岸)으로, 도착하는 편지는 신비롭고 고귀한 파란색으로 덮혀 있다. 전다빈 작가가 펼쳐놓은 열린 가능성의 세계로부터 ‘우리들 각자에게 도착할 편지’를 기다린다. 더 나아가 각자 나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끝) ■ 박겸숙(아트노이드178 대표/평론)